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런 일이 반복될 때면 쉽게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별 일이 아닌 데도 말이다간만에 황금연휴가 시작된다. 추석명절이 찾아온 거다. 그런데 또 이런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 날 저녁이 되어가는 오후에 갑자기 인터넷이 안 된다. 모뎀에 전원이 나갔다. 기본적인 확인과 긴급조치를 해 봤지만 헛수고다. 해당 기사님에게 콜을 해 봐도 받을 리가 만무하다. 나라도 안 받는다. 사생활이 있고 업무 시간이 끝났는데 긴급 출동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머피의 법칙이 또 괴롭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물건이 소모품이기에 고장 날 수 있다. 고치면 된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럴 때란 말인가. 그냥 평상시에 그것도 오전에 고장 나면 안 되나? 그러면 차분히 콜센터에 전화를 해서 방문할 기사님을 기다리면 된다그런데 왜 하나님은 꼭 이럴 때 고장 나는 상황을 허락하셔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근 일주일을 괴롭히시는가 말이다. 내가 무슨 한창 게임을 즐길 청소년도 아닌데. 이 황금연휴에 틈틈이 미리 교회 일을 준비해 놓으면 이후에 더 원활하게 다양한 업무에 대처할 수 있다그런데 이런 마음도 몰라주시고 이번에도 꼭 이럴 때 뭔가 에러가 나게 하셔서 생활을 곤란하고 힘들게 만드신다. 이미 내 마음은 시험에 든 게다. 별 일 아닌 거 같고. 더군다나 연휴 동안 집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냥 이런 상황이 너무 싫은 거다. 마음이 단단히 꼬여 버렸다. 참 못났다. 

 

당연히 해당 기사님도 연락이 안 되고 고장 신고는 해야 돼서 본사에 A/S신청을 했다. 연휴가 끝나고 나서 기사님이 방문하시겠단다. 알았다 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부아가 치민다. 고장이 안 났으면 무엇이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가 있는데 명절일수록 더욱 요긴한 수단이 멈추고 말았으니 앞으로 5일 동안 일의 동선이 힘들게 되었다.

 

그런데 고장 신고를 한 지 채 30분도 안 되어서 낯선 전화 한 통이 들어온다. 별 뜻 없이 받았다. 웬일이니 글쎄. 해당 기사님이신데 동네 가까운 지역에 있는데 본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연휴 후에 가기보다 지금 방문하고 싶은데 가도 되겠냐는 내용이었다. 수 일을 기다렸던 택배가 도착했을 때 들떴던 마음처럼 바로 오시면 된다고 했다. 몇 분도 안 되어 기사님이 오셨다. 집집마다 기계가 세팅된 상태나 방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내 딴에는 고장 난 상태며 연결된 구조를 설명하기 바빴다. 그래야 한 번에 고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다른 경우는 생각하기 싫었다.


그런데 기사님 손에는 이미 뭔가가 들려 있었다. 모뎀 전원 잭이었다. 서재에 들어와서 바로 전원 잭만 바꿔 꽂으신다. 그랬더니 죽었던 모뎀이 부활을 기다린 듯 불이 들어온다. 마치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온 느낌이랄까? 이미 연결된 인터넷은 모니터에 포털 사이트를 활짝 열어 놓았다. 모든 게 정상이다. 전원 잭도 소모품이라서 대부분 전원 잭 불량으로 모뎀에 전원이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기사님이 친절히 설명해 주신다. 추석 인사와 함께 미리 준비한 음료수를 드리면서 몇 마디 주고받는다. 기사님은 고마워 하시며 유유히 가신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던 때에 더러 곤란한 일이 생기듯이 이제는 그러지 않을 때도 되었는데 또다시 하나님께 불순한 모습을 보여 드렸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회개를 한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다음에 또 그럴 건데. 그래도 그거 아시는가? 하나님은 여전히 이런 나를 용납하시며 받아주시고 기다려 주신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 자비와 사랑과 은혜 앞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성화를 게을리 할 수는 없다. 물론 그것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시고 다듬어 가시는 인생 전체를 건 과정이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는 거다. 그것이 지혜다.


여전히 구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목사이면 뭐하나? 지금도 이렇게 연약할 뿐인데.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 고백이 진심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만큼 주신 사명에 신실했으면 좋겠다. 하나님 앞에서 충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다. 시험을 당할 수는 있어도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 주님, 어리석은 자에게 충성된 믿음을 주시옵소서!

 

 

 

 

지금은 뭐하냐고? 경주 처가댁이다. 미리 챙겨 온 노트북으로 여러 일들을 처리하고 있다. 처가댁 wi-fi가 빵빵하고 예전부터 등록이 되어 있어서 그냥 노트북만 열면 어떤 일이든지 바로 가능하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은혜일 뿐이다. 하나님의 받아주심과 오래 참으심이 아니면 우리는 단 한 시도 살아낼 수가 없다. 장인어른께서 부르신다. 커피나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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