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 눈에 안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 분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모든 자의 삶과 세상 역사를 주관하심을 믿는다. 또한 우리 미래 앞에 놓인 그 날의 심판도 그 분을 통해 이뤄질 것도 믿는다.

하지만 그런 분이 지금 우리 눈에 안 보이고 늘 그리 하셨듯 답답하고 미칠 만큼 오래 참으시다 보니 우리는 하나님이 없는 분처럼, 하나님을 모르는 자처럼 골방에서 뿐만이 아니라 제단에서조차 버젓이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자행하며 그것이 최고의 보물인 양 자식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면서까지 바벨탑을 쌓는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주님일진대,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언제나 풍요와 권력을 믿어 왔다. 성경의 시대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여전한 하나님은 맘몬인 셈이다.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교훈이 뮈든가? 솔로몬을 기억해 보고 사울 왕을 더듬어 보라. 하나님만 의지했던 겸손함으로 받았던 모든 부귀와 권세가 결국에는 그것이 우리로 교만하게 하여 하나님을 떠나 현세의 권력에만 집착하게 만들었다 

인생을 바쳐가며 손에 붙잡은 것을 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덩어리가 크고 시대적 의미를 논해야 될 만큼 가치가 높을수록 이 비움은 불가능할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것은 언어의 가벼움으로는 다 담아 낼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인생과 교회를 세우신 분이 누구이며 우리 삶의 주인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 분 앞에서 우리의 존재와 사명이 무엇인지 잊지 않고 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로 어떤 탐욕이나 야망도 내려놓게 하실 수 있다. 

백성들을 이끌며 그렇게 흠모했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야속하게도 하나님이 명령하시매 리더십을 여호수아에게 양도해야 했던 모세, 그 땅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자신을 존경하며 따르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며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리라 말해야 했던 세례요한의 심정은 또한 어떠했을까? 단언컨대 인간적인 섭섭함이나 아쉬움, 인간 내면의 탐욕이나 집착을 뛰어넘고 이것 또한 내 사명임을 담담히 고백하며 그 일에 마침표를 거룩하게 찍었을 거다. 

주님을 사랑했기에 날마다 눈물과 기도와 헌신과 희생으로 수고하며 제단을 세워왔다. 그 삶이 어느새 긴 세월을 이루었고 이제는 값지고 높아진 교회가 되었다. 사람인 이상 그 존재와 가치에 대한 강력한 집착이 왜 없겠나? 하나님의 은혜이긴 하지만 어떻게 일구어 온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신앙고백은 무엇인가? 대형교회이든 개척교회이든 도시교회이든 시골교회이든 이 땅에 세워진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지 내 소유가 아니라는 거다 

살리시고 죽이시고 세우시고 내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나를 부르시고 세우신 이가 때가 되어 충성되이 일한 나를 칭찬하시고 위로하시며 내리시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비하신 후임자를 거룩하게 세우신다. 그리고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신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처럼 오직 ''로 순종하며 하나님이 새롭게 세우시는 내 피붙이가 아닌 후임자를 축복하며 사명의 자리를 겸손히 넘겨주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런 모습 아닐까?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리더십을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옮기신 것은 출애굽 사건과 광야 40년 생활의 기적이 모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성령행전인 사도행전을 봐도 그렇다. 베드로의 화려한 사역으로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베드로는 조용히 사라지고 바울이 등장한다. 바울도 놀라운 예수님의 능력을 나타내다가 삶의 구석에서 조용히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는 소박한 모습으로 사도행전은 마무리된다. 사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 이것은 신자와 교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모든 삶과 일들이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드러내어야 한다. 하지만 대형교회의 세습은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교회가 누구의 소유인가를 묻게 만든다

평생을 수고하고 헌신했을지라도 우리의 마지막 사명은 뭘까? 세례요한의 외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가 흥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크신 하나님을 끝까지 드러내기 위해 대형교회가 할 일은 다른 것은 몰라도 세습만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 그 교회하면 그 교회 당회장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교회를 이루신 하나님을 모든 사람들은 기억하고 믿게 될 거다. 이것이 지금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살아계셔서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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