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교회 내 평신도 사역자들에게 전해드린 목회 서신인데 함께 나눕니다.

 

 

기독교 신앙은 헌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사랑과 희생으로 헌신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 된 우리도 섬김의 헌신으로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갑니다.

 

하지만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는 서로 다름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으면 은혜의 한 마음으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끌어안고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나와 다름을 언제나 불편하게 여깁니다. 이것은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여러 장애물에 걸리고 넘어지고 찢겨 상처가 날지라도 끝까지 순결하고 정직한 헌신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 속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일찍이 장담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떠날지라도 자신만은 예수님을 지킬 것이라고요. 하지만 보란 듯이 어린 소녀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고 저주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자에게 책망하시거나 분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놀라운 방법으로 그를 회복시켜 나가십니다.

 

이미 깨어지고 무너진 제자도를 일으켜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단 한 가지에 집중하십니다. 그가 처음 가졌던 똘끼로 뭉친 기백처럼 지금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지 직설적으로 물으십니다. 베드로의 답변은 갈수록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완전하지 않은 고백을 기꺼이 받으시고 버려버린 사명을 다시 붙잡게 하십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공동체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이 되고 이 영적 고백은 어떤 갈등도 믿음으로 인내하게 하며 성령님은 이 거룩한 체험으로 우리로 끝까지 자기십자가의 길을 달려가게 하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모든 섬김의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날 사랑하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여기에 내 자존심이나 한계나 여러 생각의 기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주님의 뜻이 여기에도 있기 때문에 나는 맡은 바 섬김을 끝까지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중간에 포기하고 넘어지고 자기 자리를 비우는 것은 다른 누구의 잘못이나 책임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베드로에게처럼 동일하게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지금도 나에게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에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답해야 함을 어느 순간부터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주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 열심으로 하려다가 환경이나 사람들의 문제로 이제 녹다운 되려는 것은 아닌가요? 주님을 사랑하면 바보가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손해나 서로의 탓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오늘도 제자는 자신의 면류관을 벗어 던져 버립니다.

 

각자 처한 환경에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이 지금도 나를 사랑하시며 붙잡고 계심을 깨닫고 있는지, 그러하기에 나도 지금 주님을 사랑하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지 우리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세밀한 물으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혹 지금 여러분에게 넘어지려 함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주님의 뜻일까요? 주님께서 이해하시는 것으로 그저 마무리 될 일일까요? 주님은 베드로의 조심스런 고백만으로도 그에게 교회와 성도들을 맡기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해 왔듯 자기십자가를 지고 섬기라고 말입니다또 넘어지는 것은 괜찮다 말씀하십니다. 신실하신 주님이 여전히 일으키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십자가를 내려 놓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프십니까? 아파면 쉬어야 합니다. 주님도 아파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겟세마네 기도의 힘으로 끝내 십자가에 달리셔서 당신의 사명을 다 이루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리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고 이기게 합니다. 결국은 사랑입니다. 모든 신앙생활의 동기는 주님에게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심장은 그 사랑으로 살아있고 뛰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모든 일은 표면적으로는 그 기능이 다른 것 같아도 본질은 같습니다. 바로 관계입니다. 신앙은 관계입니다. 예배는 기독교의 핵심이며 창조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친밀한 교제가 예배입니다. 지금 주님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주님 안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은 관계가 항상 좋은 것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할 줄 아는 것입니다주님은 모든 제자들로부터 외면과 배신을 당하셨지만 부활하신 이후에 그 배반자들을 먼저 찾아가셨고 친히 음식을 만들어 저들을 먹이셨습니다. 책망 대신 사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넘어진 제자들을 그렇게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했습니다. 주님 안에서의 관계도 거룩한 지식입니다. 신앙은 일의 양이나 결과, 성공 유무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입니다. 관계로 인해 함께 울고 웃는 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은 성부하나님과 원수된 우리 사이에 관계 회복(평화)을 위해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와 소그룹 안에서의 관계를 둘러보십시오. 영적 친밀함이 말라가는 곳이 있다면 주님께서 맺어주신 관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분명한 제자도이며 크고 작은 사명의 시작입니다.

 

허물이 있고 부족해도 참된 제자는 중간에 낙오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끝까지 인내하며 맡은 사명을 감당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섬기시던 자리는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편에서 표현하자면 내가 잘 가르쳐서 교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노래를 잘해서 찬양대를 하는 것이 아니고 연주를 잘해서 악기를 맡은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발적인 기쁨으로 헌신의 길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완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섬김이 필요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허물 많고 변덕이 심하고 실수투성이인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모든 일이 더딜지라도 말입니다.

 

벌써 잊으셨습니까? 은혜 뒤에 시험도 찾아옵니다. 시험을 당할 수는 있어도 시험에 빠지는 것은 결코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을 다시 고백하십시오. 새롭게 체험하십시오. 십자가를 깊이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자기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가 섬기는 자리는 여전히 울며 씨를 뿌리는 과정이지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는 시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목회를 하고 신앙생활을 해 본 바 내가 섬기는 자리의 열매는 내 때에 열리지 않고 후임자나 더 먼 시점에 열릴 때가 참 많았습니다. 답답한가요? 이것 또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감사의 자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기까지 오래 전부터 누군가 그 자리에서 자기십자가를 세우고 울면서 긴 세월을 믿음으로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기쁨의 열매를 따서 감사함으로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으십니까? 선하시고 완전하신 주님께 맡기면 시험은 또 당해도 이젠 시험에 들지는 않습니다. 갈등이 보이고 시시비비를 따져야 될 때 내가 정리하려고 하고 나의 옳음(정말 그럴지라도!)을 드러내려니까 우리 안에 마귀가 틈나는 것입니다. 이럴 때마다, 언제든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을 사랑하는 내 영혼의 신호등이 파란색인지 점검하는 것이며 관계를 여전히 붙잡고 회복하는 것이고 순리대로 섬김의 일이 끝날 때까지 나의 섬김을 다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한받지 않으십니다.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섬김이 주님의 일하심을 제한하지 않는 것입니다.

 

느껴지세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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