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어떤 일이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 국어사전에 나오는 설명이다. 어린 핏덩이가 자녀라 불리고 자라나서 성인이 되기까지 부모는 평생 헌신한다. 불효자는 자기를 닮은 녀석을 낳고 길러보면서 그제야 부모 마음을 깨닫는다. 가족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삶의 구석마다 누군가의 헌신이 아니고서는 지금의 모든 모습들이 존재할 수 없다. 누군가 나를 위해 헌신했고 나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기에 세월이라는 강물은 역사라는 바다를 이룬다.

 

목회를 하다보면 많은 헌신들을 보게 된다. 사실 신앙은 헌신의 삶이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헌신하셨고 그럼으로 우리도 그 사랑을 알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서 헌신한다. 공동의 것을 가지고 자기 자리에서 주어진 직분으로 성실하게 일하고 섬기는 헌신도 참으로 귀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자기의 시간을 깨트리고 구슬 같은 땀을 흘리고 거기다 결정적으로 자기 주머니를 적지 않게 털어가며 섬기는 은밀한 헌신자들을 보면 여러 생각들이 두텁게 머리와 마음을 감싼다.

 

가끔 아내에게 말한다. "여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우리 같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목회자랍시고 누구보다 헌신자인 것처럼 늘 회중 앞에서 말씀의 깃발을 들고 떵떵거리지만 진실로 성도님들의 고뇌와 헌신의 삶을 보면 입을 다물게 된다. 나는 정말로 그리고 부끄러울 만큼 성도님들이 존경스럽다. 어떻게 저렇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몸부림치며 신앙과 삶을 다 살아낼 수 있는 걸까? 거기다가 피땀 흘려가며 거둔 가치들을 아무 바람도 없이 사람들을 위해 때마다 힘껏 두 손을 여신다. 얼마나 고마운가. 참으로 감사하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지 않아 또 잊어버릴 거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다 알고 계신다. 그리고 잊지 않으신다.

 

우리의 예배와 섬김은 주님 앞에 피어오르는 거룩한 향기다. 주님은 그 내음을 깊숙이 기뻐 받으신다. 그 주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위로하신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에도 우리의 헌신을 고맙게 여기시며 내가 안다고 말씀하신다.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 만큼 특별한 응답이나 기적도 없다. 그런데 그들은 혼자서도 많은 것을 얻은 냥 미소를 그린다. 사람에게 행한 것을 주님이 받으셨음을 느끼기 때문이고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 가장 큰 복이며 응답임을 고백하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교회는 이렇게 각 자의 헌신으로 세워지고 넓혀지며 나누어진다. 누군가는 가르침으로, 어떤 이는 구제와 봉사로, 운전으로, 성실함으로, 함께 참여함으로, 구슬 같이 흘리는 땀으로, 재능으로, 물질로, 관계를 통한 소통 등으로 다양하게 서로를 섬긴다. 예배 중에 특별한 영적 현상이나 용광로와 같은 뜨거운 찬양이나 기도는 아닐지라도 둘러보면 조용히 각 자의 믿음대로 은혜 받음으로 살아내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남을 위하는 헌신. 오늘 남은 시간도 내일도 하나님만 바라보자. 그러면 그 분이 어디를 바라보고 계신지 알게 된다. 그럼으로써 나도 바라보게 되는 그 곳. 거기가 바로 내가서야 할 헌신의 자리다. 주님이 나를 밀치시며 따뜻하게 말씀하신다. "가서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어주렴." 주님은 나로 먼저 흘리게 하셨던 눈물로 그에겐 위로가 되게 하신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헌신하신 주님이 우리로 당신을 닮고 따르라고 지금 여기에서 부르고 계신다. "너는 나를 사랑하니?" "네, 주님이 아십니다." "그러면 그들을 섬기거라." 믿음은 응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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